혹시 열심히 저축해서 통장 잔고가 늘어났는데, 정작 살 수 있는 게 줄어든 느낌 받아보신 적 없으십니까? 저는 주식을 시작했던 이유도, 지금 디지털 자산을 들여다보는 이유도 결국 같은 지점에서 출발했습니다. 돈의 가치가 조용히, 그러나 꾸준히 녹아내리고 있다는 불안감이 있습니다.
1. 화폐의 구매력이 떨어지는 이유
구매력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여기서 구매력이란 내가 가진 화폐로 실제로 얼마만큼의 물건이나 서비스를 살 수 있는가를 나타내는 단어입니다. 숫자가 늘어도 살 수 있는 양이 줄면, 어찌 보면 모순된 상황이라 말할 수도 있겠죠. 사실상 가난해지는 것일 겁니다.
중앙은행이 화폐를 더 많이 발행할수록, 시중에 유통되는 돈의 총량은 늘어납니다. 그런데 사과와 배의 양은 그대로인데 돈만 늘어나면 어떻게 될까요? 당연히 사과와 배의 가격이 올라갑니다. 이것이 인플레이션입니다. 인플레이션이란 전반적인 물가 수준이 지속적으로 상승하면서 화폐의 실질 가치가 하락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여기서 더 골치 아픈 문제가 있습니다. 인플레이션은 모든 자산에 균등하게 작용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선호하는 자산, 즉 강남 아파트 같은 희소한 자원에 화폐가 집중적으로 몰립니다. 이것이 새로 발행된 화폐가 경제 전체에 균일하게 퍼지지 않고, 화폐를 먼저 접하는 사람과 집단에게 유리하게 작용하는 불균등 분배 현상을 의미합니다.
30년 전 1억 원으로 살 수 있었던 강남 아파트가 지금은 50억, 100억이 됐습니다. 대전 아파트가 1억에서 10억이 됐다고 9억을 번 게 아닙니다. 그 10억으로 강남 아파트를 사려면 열 채를 팔아야 합니다. 명목 가격이 올랐을 뿐, 구매력으로 따지면 오히려 아파트 아홉 채를 잃은 셈입니다.
저는 화폐 수집을 취미로 가지고 있었는데, 그 이유 중 하나도 바로 이 지점이었습니다. 은행 이자보다 희귀 지폐의 가치 상승률이 더 높을 때가 있다는 걸 경험으로 알았기 때문입니다.
2. 스테이블코인이 바꾸는 것
지금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스테이블코인(Stablecoin)에 적극적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스테이블코인이란 달러 같은 법정화폐에 1:1로 가치를 연동한 디지털 화폐로, 가격 변동성을 최소화하도록 설계된 암호화폐를 말합니다.
경제학에는 교환 방정식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MV = PY, 즉 통화량(M)에 통화 유통 속도(V)를 곱하면 물가(P)와 실질 GDP(Y)의 곱, 다시 말해 명목 GDP와 같다는 공식입니다. 지금까지 경제를 키우는 방법은 주로 M, 즉 통화량을 늘리는 양적 완화(QE) 방식이었습니다. 여기서 양적 완화란 중앙은행이 국채나 자산을 매입하여 시중에 통화를 직접 공급하는 비전통적 통화정책을 뜻합니다.
그런데 연준(Fed, 미국 연방준비제도)이 금리 인하와 자산 매입을 거부하는 상황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찾아낸 대안이 바로 V, 통화 유통 속도를 높이는 방법입니다. 스테이블코인이 보급되면 기존에 평일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만 가능했던 금융 거래가 24시간 365일로 확장됩니다. 거래 가능 시간이 세 배 늘어나면 통화 유통 속도도 그만큼 커지고, 결과적으로 달러를 추가로 찍어내지 않고도 경제 규모를 키울 수 있는 겁니다.
2025년 7월에 발효된 지니어스 액트(GENIUS Act)에 따르면,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는 발행액만큼 미국 단기 국채를 준비금으로 보유해야 합니다. 서클(Circle)이 USDC를 100달러어치 발행하면 100달러짜리 미국 국채를 사야 한다는 뜻입니다.
중국도, 월가도 더 이상 미국 국채를 적극적으로 사들이지 않는 상황에서,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들이 새로운 국채 수요처가 되는 구조입니다. 미국 달러 패권을 유지하는 데 스테이블코인이 핵심 도구가 되고 있다는 점에서, 저는 이 흐름이 단순한 핀테크 유행이 아니라 통화 패권 전쟁의 연장선이라고 봅니다.
3. 화폐 사용에 따른 비용
첫째 화폐 발행량 증가에 따른 구매력 하락에 따라 화폐가치가 줄어드는 것도 비용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둘째 법정화폐 시스템 유지에 부과되는 직간접 비용으로 세금을 들 수 있습니다.
셋째 국경을 넘는 자금 이동 시 발생하는 거래 비용인 송금 또는 환전 수수료도 비용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넷째 주말, 공휴일 거래 불가로 인한 기회비용을 손해 보는 비용으로 볼 수 있습니다.
다섯째 화폐를 사용하면서 그 자료가 우리가 알게 모르게 자동으로 기록되는 금융 거래 데이터를 필요한 곳에서 무상으로 제공되어 사용되는 것도 암묵적 손실 비용으로 볼 수 있습니다.
4. 비트코인이 국가 안보 자산?
비트코인이 투자 대상을 넘어 국가 안보 자산으로 분류될 수 있다는 이야기, 처음 들으셨을 때 어떤 느낌이셨습니까? 저도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니 논리가 단단합니다.
비트코인 네트워크는 작업 증명(PoW) 방식으로 운영됩니다. PoW란 새로운 블록을 생성하려면 막대한 전기 에너지를 실제로 소비했다는 사실을 수학적으로 증명해야만 블록 생성이 허용되는 방식입니다. 블록 한 장을 만드는 데 수천만 원의 전기료가 투입된다는 의미입니다. 이렇게 쌓인 블록들이 비트코인 블록체인이라는 디지털 만리장성을 이룹니다.
기존 인터넷망은 논리적 코드로 구성된 성벽이기 때문에, 더 뛰어난 논리, 즉 해킹 코드로 성문을 열 수 있습니다. 반면 비트코인 네트워크를 뚫으려면 이 네트워크를 만드는 데 들어간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물리적 에너지를 한꺼번에 투입해야 합니다. 사실상 해킹이 경제적으로 불가능한 구조입니다.
미국 국방부는 2026 회계연도 국방수권법(NDAA)에 따라 비트코인을 국가 안보 자산으로 채택할지 여부를 결정하는 보고서를 2026년 4월 17일까지 의회에 제출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해시레이트(Hashrate)라는 개념도 중요한데, 해시레이트란 비트코인 네트워크에서 초당 수행되는 연산 작업의 총량을 말하며, 이 수치가 높을수록 네트워크 보안이 강화됩니다.
현재 미국이 전 세계 비트코인 해시레이트의 약 38%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채굴에 사용되는 채굴기의 98%는 중국산입니다. 비트코인 네트워크를 안보 자산으로 공식화하는 순간, 중국산 채굴기는 전량 교체 대상이 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얼마 전 어떤 교수님이 비트코인 하드포크(Hard Fork)를 언급하시는 걸 들었습니다. 하드포크란 블록체인의 기본 규칙을 근본적으로 변경하여 기존 체인과 새로운 체인으로 분리되는 현상으로, 이더리움과 이더리움 클래식이 대표적 사례입니다. 예전에 사람들이 말하던 내용 중에는 비트코인 거래량이 줄어드는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 1/1,000 단위로 쪼개는 식의 분할을 이야기하기도 했었줘.
그런데 교수님께서는 비트코인 클래식과 새로운 비트코인으로 나뉘는 방향을 이야기하셨습니다. 만약 미국 정부, 월가, 현물 비트코인 보유자들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다면, 그런 변화 역시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5. 흐름의 본류를 타자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흐름이 강이라면, 본류인지 지류인지를 확인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합류 비용이 커집니다. 저는 이 점을 주식 거래를 하면서도, 디지털 자산 거래를 시작하면서도 반복해서 느꼈습니다. 대상만 바뀌었지, 목적은 항상 같았습니다. 내가 가진 자산의 구매력을 지키는 것.
미국이 비트코인을 국가 안보 자산으로 공식 채택하는 순간, 다른 나라들도 울며 겨자 먹기로 비축 경쟁에 뛰어들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됩니다. 한국은행의 2024년 연간 보고서에 따르면 원화의 통화 정책은 미국 연준의 금리 방향과 높은 상관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수출 의존 구조상 독립적 통화 정책 운용에는 구조적 한계가 있습니다.
스테이블코인과 비트코인이라는 흐름이 본류인지 지류인지 아직 완전히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미국 정부, 빅테크, 월가라는 세 축이 서로 다른 이해관계 속에서도 이 방향으로 수렴하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해 보입니다.
저는 막무가내로 쫓아가는 것보다는, 현재 흐름을 빠르게 파악하고 합리적인 판단 위에서 동참하는 편이 낫다고 봅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도 한번 스스로에게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지금 구매력을 잃어가는 쪽에 서 있는가, 아니면 지키는 쪽으로 움직이고 있는가?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A3t4XxyGtjM
https://www.eia.gov/
https://www.bok.or.kr/
◇ 본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바탕으로 작성된 것이며, 금융투자를 유도하는 조언이 아닙니다. 디지털 자산 투자는 원금 손실 위험이 있으므로, 중요한 결정 전에 반드시 전문가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